[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 성공사례] "상간녀야! 내 눈에 딱 걸린 죄!! 잘 가거라!"
우선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였다.
나는 주말부부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친정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너무 먼 곳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 당시 남편은 주말마다 집에 잘 왔고, 장모님 밥이 최고 맛있다며 애교도 잘 부렸던 인간이다.
그런데?
발령 받은지 1년 지나서부터는 거의 안 오거나 와도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 뭔가 이상했다.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는 다음날 일어나서 씻고 또 바로 나가고.
그냥 그거다 '나 이 집에 들어왔고 눈 도장 찍었으면 됐지? 내 도리했다' 이런 느낌?
그런데 여자의 촉이란..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딴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외도는 탄로 났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구나, 알게 된게 바로 이 때가 아닐까 싶다.
상대 여자는 타지의 유흥업소에서 만난 돌싱녀였다. 둘이서 아주 신나 보이더라.
지금이야 담담하게 이야기 하지만...
상처는 상처다. 이 상처는 평생 가는거다, 그냥 흉이 진 채로.
외도 사실을 알게된 그 날,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 인간에게 전화를 걸었고, 분노와 배신감이 휘몰아치다보니 화부터 냈다.
아무튼 나는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이혼을 결심했다.
당연히 너무 많은 고민이 따랐다.
그러나 남편의 부정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심지어 반성조차 하지 않았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는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송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아빠없이 살아갈 아이들이 나를 원망할까 두려웠고, 죄 없는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부모에게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니 이혼을 결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지만, 경제력이 없는 내가 어떻게 양육권을 주장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동안 뭐했나 싶을만큼 준비된 것도 없었고 내 삶은 그저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내 아이들.. 절대 포기 못하겠더라.. 해볼 수 있는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다. 이것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리고 나를 배신한 이 인간과 상간녀를 어떻게서든 응징하고 싶었다.
나는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를 찾아 상담을 진행했다.
그를 찾은 이유는 가정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법과 관련해 다양한 사회활동도 활발히 해온 분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노종언 변호사님과 상담한 이후 다른 곳도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상담 이후 그냥 "여기서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노종언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남편과 상간녀의 부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다.
증거보전신청이라는 것도 이 때 알게 됐는데 쉽게 말하면, 증거 인멸 방지를 위해 소송에 착수하기 전 '이거 건들지 말아라!'고 법적으로 보호하는 절차다.
부정행위가 일어난 숙박업체와 이들이 데이트했던 장소에 협조가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종언 변호사님의 적극적인 조력 덕분에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따로 미행하며 증거 확보하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증거를 확보해 마음이 편했다.
결국 나는 상간녀 소송에서 이겼고 위자료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시기에, 그냥 주저 앉았더라면 난 어떻게 됐을까?
내게 용기를 준 아이들, 그리고 나의 상처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법적으로 잘 다투어준 노종언 변호사님에게 매우 감사하다.
- 이 글은 의뢰인 시점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